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의 복음서 (문단 편집) === 공관 복음서와의 차이 === 대체적으로 공관 복음의 경우, 예수의 행적과 '하느님 나라의 선포'를 초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비신자들이 해당 복음을 보고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는 의도로 집필되었다. 반면에 요한의 복음의 경우, 초반부터 '예수는 어떤 분이신가?'에 초점을 맞추었고, 이미 믿음을 가진 교우들이 신앙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도록 복음서가 집필되었다[* 이는 기존의 공관복음이 서술하지 못한 내용을 덧붙임으로써 보충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졌기 때문이다]. 요한의 복음서에는 공관 복음서에 있는 많은 사건들이 생략되어 있다. 예수의 탄생, [[세례]], 시험, 변화산 사건, 최후의 만찬 등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이미 그러한 사건들이 요한의 복음서가 집필될 당시에는 잘 알려져 있었기에 생략하였다는 학설이 있다. 하지만, 요한 공동체라는 공관 복음서의 전승과는 다른 전승을 가지고 있는 신앙 공동체에서 집필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저자가 사건이나 사실보다는 신학 사상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자기 계시에 대한 해명이 될 수 있는 예수의 전기 대신 강생에 대한 신비적이고 철학적인 견해가 실려 있다. 따라서 요한의 "예수의 인물과 가르침에 대한 표현"은 공관 복음서의 표현과 아주 다르다. 저자는 예수의 가르침보다는 예수의 본성 및 하느님과 예수의 관계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병을 고치는 기적을 소개할 때에도, 인간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조하는 공관복음과 달리 신성의 '표적'으로서의 기적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짧게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많은 공관복음서와 달리, 강의에 가까운 긴 어록이 많이 실려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사실 대부분의 요한 복음서의 내용은 이러한 예수의 강의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공관 복음서에 생략된 부분이 요한의 복음서에는 길게 실려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 [[가나의 혼인잔치]] 유명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 니고데모(3장 1 - 21절, 7장 50 - 52절, 19장 39절) 바리사이이자 최고 대의회 의원이었다. 당대 유대인 사회의 인텔리. 예수를 시험하고자 몸소 예수를 찾아가서 질문을 던지는데, 이 때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거듭남([[중생]])'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대화 이후 니고데모는 예수를 변호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제들은 그를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토라를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하고 디스한다. 예수가 죽고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가져온 것도 그다. 가톨릭의 전승에서 그는 개종하고 [[순교]]했으며, 순교자 성 니코데모(축일 [[8월 3일]])로 공경받아 왔다.[* [[http://www.mariasarang.net/saint_bbs/bbs_view.asp?index=bbs_saint&no=640&col=&sort=|관련 출처]] ] * 사마리아의 여인과의 대화 가톨릭에서는 이 사마리아 여인이 훗날 예수의 제자가 되어 카르타고에서 순교한 성녀 포시나(Photina, 축일 [[3월 20일]])라고 가르치고 있다. * [[라자로]]의 [[부활]] 사건 성 라자로는 이 사건 이후 예수의 제자가 되었으며, 가톨릭 전승에서는 여동생 [[마르타]] 및 마리아[* [[성모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인물이다.]와 함께 [[프랑스]] [[마르세유]] 지역으로 가서 [[주교]]로 순교했다고 한다. 축일은 [[12월 17일]]. 공관 복음서에서 한 번 이상 언급되었지만 요한의 복음서에서 언급하지 않은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처녀탄생설화 * 예수의 [[세례]][* [[세례 요한]]이 증언하는 형태로 자신이 예수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비둘기]] 모습의 성령이 내려왔다는 내용이 있다.] * [[광야의 유혹|광야에서 고난 중 악마의 유혹을 받음]] * [[성체성사]]의 제정 * 예수의 승천 이렇게 설명을 하다 보면 여타 공관 복음서들보다 훨씬 읽기 어려운 복음서로 느끼기 쉬우나, 막상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읽기 좋은 편이다. 다른 복음서들은 아직 기독교가 소아시아 구석의 지역 종교이던 시절 예수가 얼마나 [[짱짱맨]]인지를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쓰여진 측면이 크다. 그러나 요한의 복음서는 예수의 미리 신성을 전제해 두고 선별한 소수의 에피소드를 통해 예수께서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는지를 압축적이고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예수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지나가면서라도 대충 들어보았을 현대인들이 그 일화들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고 이해하기에 편하다. 특유의 헬레니즘적 배경 덕에 그리스식의 다듬어진 문장력이 돋보이고 읽기에 좋다는 점 또한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